굴구지산촌마을
마을의 자연환경
굴구지 마을(구산3리)입구에 뒷들(1里), 바깥잘미(2里), 안잘미(4里) 동쪽은 매화천(梅花川)이 흐르고, 건너편에 성류굴이 보이며, 서쪽은 남수산(嵐峀山)의 지맥(支脈)이
마을 뒷산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쪽은 매화리 북쪽은 수곡리가 있습니다. 동쪽은 왕피천이 굽이굽이 흐르는 곳을 따라 6㎞ 거리에 안잘미가 있고,
서쪽은 통고산맥(通古山脈)과 금장산맥(金藏山脈)이 있으며 그 사이가 왕피천 상류(上流)입니다. 남쪽은 금장산맥의 지맥(支脈)이 가로 놓여 있고, 북쪽은 통고산(通古山)
지맥(支脈)이 동쪽으로 뻗어 있는 경치 좋은 곳입니다.
마을의 역사
1300년경에 충주지씨(忠州池氏)가 개척한 마을로 왕피천 하류(下流)에 위치한 월호동(月湖洞)에서부터 아홉고개를 넘어 마을이 있다 하여 구고(九皐)라
합니다. 그리고 이 마을에는 탑평(塔坪), 원심(遠深)이라는 자연부락이 있는데, 탑평(塔坪)은 2가구가 살고 있으며 고려시대의 삼층석탑(三層石塔)이 있다하여
마을 이름을 탑평이라 하였고 원심은 멀고도 깊은 산 속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원심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마을 이야기
[학소대]
구산3리에 있는 굴구지마을의 앞으로 흐르는 냇물 가운데 우뚝 솟은 큰 바위에 학의 집이 있었다는 암석 전설이 있습니다. ‘굴구지마을 옆 양쪽으로
흐르는 냇물 속에 섬처럼 우뚝 솟은 큰 바위 위에 학의 집이 있다’ 하여 이를 ‘학소대’라 부릅니다. 약 200년 전 어떤 사람이 이 대(台)의 바위에 흙을
덮고 조상의 분묘를 만들었으나, 홍수로 유실 당하였다고 합니다. 또 이 곳은 많은 선비들이 찾아와 절경에 흥취 되어 시를 지었다는 설도 전해집니다.
현재 ‘청송백운학(靑松白雲鶴), 학소운만리(鶴巢雲萬里)’라는 글이 남아 전합니다. 학소대는 많은 선비들이 찾아와서 절경에 흥취 되어 시를 지으면서
노닐었던 곳이고, 십장생 중의 하나인 학은 매년 부화할 때마다 둥지로 돌아온다는 길조입니다. 지금은 학이 자기 둥지에 돌아오지 않고 이름만
남아있습니다. 학이 미련을 버린 곳에 조상의 묘를 썼으니 홍수로 유실당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 이면에는 어떤 상황에 처했더라도 물가에는
묘를 쓰지 말라는 금기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울진 구산리 삼층 석탑]
울진 구산리에 위치한 삼층 석탑은 2층 기단을 구비한 평면 방형의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입니다. 탑 주위로 펼쳐진 광활한 자연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신라석탑의 전형양식을 잘 계승했다고 평가 받습니다. 건립시기는 통일신라 후기, 9세기 후반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탑이 있는 곳은 청암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 내려오며, 통일신라시대에 청암사가 다 타면서 석탑만 남았는데 1968년 복원하였고, 그 해 12월 19일 보물 제49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2004년에 해체, 수리하였으며, 2006년에는 주변을 발굴 조사하여 금동 불상 및 철마, 중국 동전, 명문기와, 자기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어 귀중한 학술적
자료를 제공했습니다. 구산리 삼층 석탑은 울진 지역에 유존하는 가장 오래된 석탑으로, 울진 지역의 불교사와 석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입니다.
탑이 있는 마을의 이름은 ‘탑동’인데, 사람들이 탑을 보고 소원을 빌며 돌았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합니다.
굴구지산촌펜션
굴구지 산촌펜션은 마을돌담길을 지나 아늑한 산자락에 자리잡아 왕피천과 칠성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좋은 곳에 위치합니다.
1,000 평(3.300㎡)의 부지에 3동의 펜션, 황토구들방, 정자, 쉼터를 조성하여 마을을 찾는 손님들이 숙박과 더불어 다양한 체험과 휴식이 가능하도록
조성하였습니다. 또한 펜션은 다양한 크기의 방으로 구성되어 가족, 연인, 동호회 모임 등 여러 분들이 쉬어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왕대나무 민박
넓은 마당과 돌담, 외양간에는 소가 한가로이 여물을 먹고 뒤뜰에는 토종닭들이 모이를 쪼는 따뜻한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 집이랍니다.
들길펜션
마을 어귀에 자리잡아 논밭과 칠성봉이 바로 보이는 전망 좋은 펜션입니다.
마을 먹거리